EDM 논쟁에 부쳐- 경계선 긋기의 허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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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M(Electronic Dance Music)으로 찬양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의 논쟁이 최근 있었다. 10년 전만 해도 ‘롹/메탈 음악으로 찬양할 수 있는가’ 하는 논의 이후 꽤 오랜만에 나온 주제다. 필자는 대학때 대학교회 찬양팀의 ‘소수정예미남일렉기타’ 파트 소속이었으므로 이 논의에 상당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롹/메탈은 역시 일렉기타의 육중한 드라이브 사운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리프가 이끄는 음악이니, 자연히 일렉기타는 예배음악을 ‘롹’음악화 하는 데에 앞장서는 일등 공신처럼 여겨졌다.

당시의 논의의 흐름에서, ‘롹/메탈은 좀 그래..’ 하는 입장에 선 이들이 했던 일은 ‘경계선 긋기’였다. 다양한 경계선들은 각각의 기준에 따라 기독교음악과 대중가요 사이에, ccm과 복음성가 사이에, 복음성가와 예배음악 사이에 그어졌고, 대중가요는 건전가요와 세상음악으로 나뉘었다. 이 중에서 우리 – 진지한 그리스도인 – 가 향유할 수 있는 음악은 여러 경계선에 둘러싸인 좁은 공간이었다. 그 공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간이니, 롹이나 메탈 같은 난장판스런 장르가 침입할 수 없는 범위였고, EDM같은 세상의 흥청망청 음악은 전혀 어울릴 수 없는 공간이었다. 자연히, 이 공간은 소위 예배음악이라는 애매모호한 제하에 널리 소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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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필자가 제기했던 문제의식은 바로 그 ‘경계선’이었다. 그 경계선이 과연 얼마나 확정적인 것인가 하는 것이다. 롹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면, 소위 ‘예배음악’이라는 것으로는 항상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것인가? ‘예배음악’이 잘못 사용될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하나님을 높이려는 명목하에 자기자신을 높이고 물질의 축복과 현세구복을 기독교신앙으로 둔갑시키고 타자배제를 정당화하는 일은 결코 없단 말인가? 감정적 몰입의 극대화로 자기폐소성에 빠져 황홀경을 반복적으로 체험하기를 갈구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 기독교신앙의 유산인가? 롹음악을 들으면 – 우리가 그러고자 한다면 – 하나님을 기억할 수는 없는가? 메탈 장르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어떠한 성품도 우리에게 계시될 수는 없는 것인가? 틸리히가 말한 종교성, 즉 ‘궁극적 관심’에 잇닿게 될 가능성은 롹과 메탈과 EDM은 제공하지 않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해보면 그 ‘경계선’이라는 것은 대단히 기만적이다. 장르적으로 따지고 보면, 당시 롹이나 메탈에 대해 경계심을 가진 이들이 예배음악으로서 향유하는 음악 장르는 ‘포크’였다. 오늘날 EDM에 경계심을 가진 이들은 ‘모던락’이나 ‘발라드’로 구성된 예배음악에 편안함을 느낀다. 결국 이 경계선은 ‘특정 장르에 대한 취향’의 문제이지, 결코 신학적, 영적 문제가 아니다.

이 경계선은 기만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이기까지 하다. ‘EDM으로도 찬양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 행위는, 현재 향유하고 있는 찬양의 양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면서 오롯이 외부(EDM)를 향해서만 칼날을 가는 것이다. EDM을 오직 ‘부비부비’의 현장에서만 접했다면, 오직 그 눈으로만 EDM이라는 장르를 판단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EDM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판단자의 일말의 경험을 EDM 전체로 확대시키는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형식적으로나마 EDM을 공정하게 논하는 모양새를 취하지만, 사실상 현행의 찬양 양태에 대해서는 무비판적으로 일관하게 된다. ‘내가 인도하는 찬양은 괜찮은데, 니가 인도하는 찬양은 왜 그 모양이냐’ 하는 셈이다. 차라리, 우리의 질문은 – 틸리히식으로 말하자면 -, 그것이 내부가 되었든 외부가 되었든, 우리의 찬양은 과연 우리를 ‘궁극적 차원’에까지 잇닿게 하는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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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 선교단체의 수련회에서 있었던 DJ의 EDM 찬양 동영상을 보고 상당수는 ‘세상 클럽이나 다를 바 없다’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식의 의견을 표했다. 그 부류는 자신들이 대단히 신학적, 신앙적인 취지에서 판단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들은 엄연히 ‘문화적 판단’을 한 것이다. 그들의 삶 안에서 ‘기독교 신앙’이 향유되었던 그 문화적 맥락까지도 ‘기독교 신앙’으로 오해한 나머지, 자신들이 ‘기독교 신앙’을 향유할 때 경험하지 못했던 다른 양식의 문화적 맥락이 눈 앞에 펼쳐지자, ‘이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라고 우겼을 뿐이다.

문화를 종교인양 지목하여 배제하는 행태는, 결국 기존에 용인되던 특정 문화만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으려는 ‘마성적인 것(the demonic)’일 뿐이다. 바로 여기에 경계선 긋기의 허무함이 있다. ‘하나님을 위해’ 경계선을 그었으나, 그것이 과연 정말로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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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인 척 하고 싶지 않은 b급 날라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