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설교하면 벌금 문다? 차별금지법안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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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 지나간 차별금지법?

기독교 컨텍스트에서 동성애 논쟁이 벌어지면 어김 없이 ‘차별금지법’ 이야기가 등장한다. 신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의 대부분은 ‘동성애는 죄이나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가진 것으로 필자 맘대로 추측해본다. 왜냐건, 필자가 그랬기 때문이라고 답하련다. 아무튼 그들을 품어야 한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차별금지법’을 대단히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기에, 이게 뭐가 문제인가를 다시 살펴보고자 이 글을 쓴다.

한국교회의 눈에 비친 차별금지법

먼저, 차별금지법에 대해 떠도는 한국교회 안의 오해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두 가지만 다뤄보면 다음과 같다.

  •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니, 주일예배 설교에서 ‘동성애는 죄다’라고 설교하면 차별금지법 위반으로 처벌된다.
  • 교회 부목사 청빙시 조계종 소속 스님이 지원했는데 스님을 떨어뜨리면 종교 차별이니 차별금지법 위반으로 처벌된다.

이것은 사실인가, 오해인가? 필자가 당시 지역교회 사역 중에도 ‘동성애 설교하려면 200만원 내놓고 설교해야 된다’는 자못 심각한 우스갯소리가 있었던 만큼, 한국교회 안에서 이 문제는 기정사실처럼 여겨지곤 했다. 이것은 사실인가?

팩트 체크

굳이 누구에게 물을 필요도 없다. 법안을 보면 될 일이다. 대한민국국회 입법예고 홈페이지 – 종료된 입법예고에 등재된 차별금지법안은 총 3개 버전이 있다.

  1. 2012년 11월 6일에 제안된 [1902463] 차별금지법안 (김재연의원 등 10인)
    http://pal.assembly.go.kr/law/endReadView.do?lgsltpaId=PRC_W1I2V1L1H0O6L1S8T4W5C5T4E3K8R1
  2. 2013년 2월 12일에 제안된 [1903693] 차별금지법안 (김한길의원 등 51인)
    http://pal.assembly.go.kr/law/endReadView.do?lgsltpaId=PRC_N1X3C0H2H1Y2B1P5Y2F6G3L9Q1E2O3
  3. 2013년 2월 20일에 제안된 [1903793] 차별금지법안 (최원식의원 등 12인)
    http://pal.assembly.go.kr/law/endReadView.do?lgsltpaId=PRC_O1T3D0E2O2R0Q1V0Z2Z4O1V5F5S5S8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보다 자세한 내용이 있는데, 각각 hwp파일과 pdf파일로 내려받을 수 있게 되어있다. 글자도 큼직큼직하고 내용도 그리 많지 않으므로, 한 번씩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이 법안들의 입법 사정은 모두 ‘종료’되었는데, 아마도 기독교인들의 거센 반대가 그 배경이지 않나 싶다. 그 반대운동의 배경에는 앞서 언급한 ‘오해’가 존재했다.

이러한 오해가 정말로 오해인지, 아니면 차별금지법 제정시 현실적으로 마주해야 할 사실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차별금지법안의 가장 최근 버전인 [1903793] 차별금지법안, 즉 최원식의원 등이 제안한 법률안 원문을 살펴보도록 하자. 제 1장 총칙 중 제 4조를 먼저 살펴보자.

4(차별의 범위) 이 법에서 차별이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 또는 경우를 말한다.

1.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연령·장애·병력·피부색·용모 등 신체조건, 인종·언어·출신국가·출신민족·출신지역(출생지, 등록기준지, 성년이 되기 전의 주된 거주지 등을 말한다) 등 출생지, 기혼·미혼·별거·이혼·사별·재혼·사실혼 등 혼인상태, 출산형태 및 가족형태, 종교, 정치적 견해, 전과·성적평등·성적지향·성별정체성·학력·고용형태 등 사회적 신분(이하 성별·학력·지역 등이라 한다), 그 밖의 사유를 이유로 차별하는 행위

2. 1호에 해당하는 이유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의 영역에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

.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 고용(모집, 채용, 교육, 배치, 승진·승급, 임금 및 임금외의 금 품 지급, 자금의 융자, 정년, 퇴직, 해고 등을 포함한다)

. 재화·용역 등의 공급이나 이용

. 법령과 정책의 집행에 있어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차별하는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

3. 외견상 성별·학력·지역 등에 관하여 중립적인 기준을 적용하였으나 그에 따라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불리한 결과가 초래된 경우

4. 성별, 인종, 피부색, 출신민족, 장애를 이유로 신체적 고통을 가하거나 수치심, 모욕감, 두려움 등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

5. 성별·학력·지역·종교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 등 불리한 대우를 표시하거나 조장하는 행위

6. 1호에 해당하는 이유로 인터넷, 소셜 미디어 등 온라인에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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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에서의 동성애 설교를 법적으로 ‘차별’이라고 판단한다면 아마도 제4조 4항 혹은 5항에 근거하여 ‘차별’ 판정을 받게 될 거라 생각된다. 또한 스님의 교회 고용 문제는 2-나항에 근거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왠만하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법안에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라는 단서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주일 예배에서 ‘성경에는 동성애가 죄라고 써있습니다’라는 걸 넘어서 도가 넘치는 동성애 혐오적이고 인신공격적 발언을 무지막지하게 일삼는다면 모를까, 주일예배 설교단에서 차별금지법으로 처벌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성서를 신앙의 근간으로 삼는 개신교 교회 주일 예배에서, 성서에 쓰여진 내용을 설교하는 일 – 물론 동성애를 죄라고 하는 신학적 문제에 대해서는 앞서 다른 글타래로 필자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에 대하여 사법부가 ‘합리적인 이유’에서 배제시킬 가능성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 그리고 주일예배는 성서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모이는 의도적인 자리이기 때문이며, 그 지난하고 미묘한 성서의 해석학적 입장에 대해서는 사법부가 관심을 가질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일 예배에 동성애 설교를 했는데 누군가가 신고했다고 자동적으로 벌금형을 받게 되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법안이 그렇게 막 만드는 것이 아니다.

스님의 고용 문제도 마찬가지. 부목사의 직무는 성서와 기독교를 가르침 – 물론 현실적으로는 꼭 그렇진 않다 – 을 근간으로 삼는데, 불교를 공부한 스님을 고용 고려 대상에서 제외시킨다고 해서 그것이 꼭 “종교를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수학 선생을 구하는데 영어 선생이 지원했다고 다 고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합리적인 이유’에 해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이유’에 벗어나는 차별은 무엇인가? ‘당신은 고졸이므로 우리 병원에서 치료해줄 수 없습니다’, ‘넌 동성애자니까 다른 학교로 전학가줄래?’, ‘여자는 재수없어서 안 뽑습니다’ 뭐 이런 류다. 뭐 물론, 예전 국가보안법의 무리한 법적용 및 집행의 흑역사에 대한 기억이 있기에, 사법부가 ‘합리적인 이유’를 대단히 무리하게 적용하는 데에 대한 염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흑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합리적인 이유’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이 될 것이다.

이런 식의 차별과 불평등을 법적으로 저지하기 위해 제안된 법이 차별금지법이다. 고졸자는 ‘우리’ 환자일 수 없고 동성애자는 ‘우리’ 학생일 수 없고 여자는 ‘우리’ 직원일 수 없다는 병원과 학교와 회사에 대해, ‘그들도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다!’라고 당당히 편들어주는 법이 차별금지법이다. 성서에 자주 등장하는 누군가와 많이 닮아있지 않은가? ‘예’자로 시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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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would Jesus do?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다 해도 ‘국회의원’들에겐 그다지 희망이나 기대 따위를 바라지는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차별금지법안을 제안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그리 무른 이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표 많은 특정 종교단체가 반대하고 나서니까 금방 꼬리내리는 걸 보면 평소의 판단이 옳았나 싶기도 하다.

한국교회가 이러한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에 일등 공신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성서에 쓰여진 문자를 앵무새마냥 되풀이할 권리를 위해 우리는 ‘그들은 차별받아도 된다’, ‘차별하는 게 우리의 소신인데 우리더러 어떻게 차별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거냐?’ 식의 메시지를 사회 전반에 널리 알렸다.

서로 사랑해야 우리가 누구의 제자인지 세상이 알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너희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당신에게 한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어쩌면 우리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차별금지법이 조건 없는 보편성으로서의 하나님의 사랑에 유비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대적자로서 유비된다. 일반 성도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동참했을텐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지도자의 죄가 중하다.

구약의 율법을 너무나도 중요시해서 미드라쉬까지 만들어 율법을 거룩히 지켜내려던 바리새인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저, 님이 메시야인 건 알겠는데요, 그래도 우린 이 율법을 지켜야 하걸랑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건 알겠는데요, 그래도 우리는 저 세리들이랑은 다르걸랑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죽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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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인 척 하고 싶지 않은 b급 날라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