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M 논쟁과 미디어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단상 (3)(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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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M 논쟁과 미디어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단상 3](결언)

셋째, ‘이용과 충족(Uses and Gratifications)’

1. 초기 미디어 연구는 ‘미디어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는가?’라는 ‘효과론’에 집중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반대로 ‘사람들이 미디어로 무엇을 하는가?’에 연구의 초점을 맞춘다. 이는 ‘미디어는 적고 사람이 많던 시대’가 지나고, 이제는 ‘사람보다 미디어가 더 많은 시대’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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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우 카츠(Elihu Katz, 1926∼ )

2. 1973년 엘리우 카츠가 제기한 ‘이용과 충족 이론(Uses and Gratifications Theory)’은 ①왜 사람들이 미디어를 이용하며, ②미디어를 이용하도록 사람들에게 동기 부여하는 것은 무엇이며, ③그로 인해 무엇이 충족되는가?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특히 뉴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다채널∙다매체 시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이론이 재조명받고 있다.

3. 다시 말해서, 이용자는 무조건적 미디어의 메시지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와 필요에 맞게 미디어를 이용한다. 예를 들어, 정보획득과 같은 인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뉴스를 보고, 신나게 웃거나 울고 싶은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을 본다.

4. 이러한 이용과 충족이론의 핵심은 ‘미디어 간의 경쟁’이다. 미디어가 이용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른 미디어들과 경쟁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미디어 환경을 생각해 보라. 이용자들의 한정된 주목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한다. 아이돌은 더 자극적인 춤과 의상으로 어필하고, 드라마와 영화의 스토리는 점점 더 선정적이 되어 간다.

5.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이용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미디어들의 치열한 경쟁이 존재한다. 이를 단순히 PD의 타락(?)이나 저질 기획사(?)의 욕심으로 탓할 것이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용자들의 선택을 얻기 위해 경쟁해야만 하는 구조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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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늘날 예배의 환경은 어떠한가? ‘미디어의 홍수’와 함께 ‘예배와 설교의 홍수’이다. 기독교 방송국 수가 늘어나는 만큼 예배와 설교는 흔해진다. 각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성도는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설교자의 설교를 들을 수 있다. SNS와 팟캐스트를 통해 설교의 핵심(?)만을 간추린 인스턴트식의 설교가 소비된다. 위로가 필요할 때 듣는 설교, 즐겁게 웃고 싶을 때 듣는 설교가 구분된다. 때로는 클래식하고 경건한 예배가 선호되고, 때로는 모던하고 자유로운 예배가 선호된다. 교회를 선택할 때 설교는 물론, 교육부의 교육 수준과, 주차시설이 잘 되어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7. 문제의 핵심은 ‘예배의 다양성’이 아니다. 그 ‘다양성’의 목적이 회중의 ‘욕구와 충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전통적인 예배라도 그것이 회중의 만족을 위해 존재한다면 참된 예배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EDM 워십이 회중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한다면, 그 역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예배 인도자의 의도와는 달리 회중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회중들로부터 ‘선택’되고 ‘이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단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택’된다고 해서, 최신의 트랜드가 ‘반영’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최선의 예배라 평가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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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며..]
1. EDM이라는 장르로 찬양을 드리는 새로운 시도는 긍정적이다. 예배에 대한 그 열정과 진정성은 물론 격려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도에 앞서 충분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제안 역시 경청해 주길 바란다.

2. ‘드럼의 사용’과 같은 논쟁에도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드럼’이라는 ‘이미지’가 회중에게 ‘재전유(Re-appropriation)’되어가는 과정 필요했다는 것이다. 찬양에 있어서 ‘화성의 사용’도 마찬가지이고, 예배에서 ‘조명이나 영상의 사용’도 그렇다.

3. 바라기는 이러한 우려를 단순히 ‘보수’나 ‘꼰대’의 고리타분한 입장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예상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함께 점검해 나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예배에 대한 새로운 시도와 고민이 이용자의 ‘욕구 충족’을 위한 단순한 ‘방편’으로 오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더 철저하게 준비하고 고민해서 새로운 세대가 오롯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길 바란다.

4. 엘리우 카츠는 ‘이용과 충족 이론’에서 ‘능동적인 수용자’를 강조한다. 이는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며, 미디어 이용자를 ‘수동적인 위치’에서 ‘적극적인 위치’로, ‘수용자’에서 ‘참여자’로, ‘소비자’에서 ‘시민’으로 전환한다.

5.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해 찬양을 받으신다. 인간을 ‘찬양하는 기계’로 창조하지 않으신 이유는, 우리가 ‘능동적’으로 올려드리는 찬양을 더욱 기뻐 받으시기 때문이다. 논의 가운데 이러한 인간에 대한 긍정과 믿음이 동반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최선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내재된 욕구이며 최상의 충족임을 발견해 갈 것이다.

(단상 1: http://jundosa.com/archives/4838)
(단상 2: http://jundosa.com/archives/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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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와 문화를 공부했다. 현재 소망교회 미디어 담당 목사이며, 고려대 언론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있다.